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비에트 연방 영웅 (문단 편집) == 수훈 == 소련영웅 칭호는 '''[[소련]] 정권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영웅적인 위업의 달성, 용맹스러운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수여된다. '''즉, 분야에 관계없이 [[본좌|최고이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수훈 대상''' : 다음에게 수여된다. ||소련 국적자 소련 내의 단체[* 지방자치단체(시, 군 등), [[군대]]를 포함, [[소련]] 내 존재하는 '''모든 단체'''가 수여 받을 수 있다.] 외국인 및 외국 주재 단체 || 한마디로 '''아무나 또는 그 무엇이든''' [[1934년]] [[4월 20일]]에 처음 수여되었다. [[북극]] 탐험을 위해 출항했다가 [[북극해]]에서 조난된 [[쇄빙선]] '첼류스킨(Челюскин)'의 승조원들을 구조한 [[파일럿]] 10여명에게 수여되었으며, 그 이래로 [[소련 해체]]까지 '''약 1만 2천명'''이 이 칭호를 수여 받았다.[* 이 칭호(훈장)의 대상자에는 소련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도 포함하기에 1만 2천이라는 숫자는 거대한 소련이라는 나라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지극히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독소전]] 시기에''' 많은 수가 수여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 밝혀진 전쟁 영웅들에게도 사후 수여되었다. [[유리 가가린]] 이후 [[우주인]]은 우주 비행을 성공하면 1개를 받는다.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와 마찬가지로, 수여시 [[레닌훈장]]을 [[1+1]]으로 같이 준다. '''영웅 칭호는 다른 훈장들과 [[끝판왕|급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걸맞는 조치들이 내려진다. 일단 수훈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에 '''영웅의 칭호가 새겨진 [[동상(조형물)|청동제의 표식(비문)]]'''을 설치한다. 영웅의 칭호를 받은 자는 [[소련]] 내의 각 명판에 이름이 기록되어 기념되며 '''생가는 [[던전|영웅의 출생지]]'''로서 마찬가지 명판이 세워진다.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기록에도 '''[[만렙|영웅]]'''으로 기입된다. 마찬가지, [[신문]] 기사 등에서 해당 수훈자를 명기할 때는 거의 반드시 '''소련 영웅'''(Герой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이라는 호칭을 앞에 붙인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1회를 받았다. 원래 영웅 칭호는 다른 훈장들과 달리, 말 그대로 '''명예로운 칭호'''로 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독소전쟁|나치 독일의 침공]] 이후 [[파워 인플레|영웅이 폭발하게]] 되어 2중 영웅, 3중 영웅''' 등의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특히 공식적으로 수상 제한은 3회였지만, 주코프나 브레즈네프 같이 이를 초월하고 4회까지 받은 경우도 있었다.[* 주코프는 공적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중복으로 수여받을 만하다고 인정되지만, 브레즈네프는 4회를 모두 자신이 자신에게 직접 수여한 자뻑에 불과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전쟁]]이 끝나고 평화기에 접어들면서, [[소련공산당]]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별 이유 없이 수여받는 일이 잦았던 덕택에 [[1988년]]부터는 복수 수훈이 금지되었다. [[군복]]의 경우, 위/아래 카라의 사이와 수평에 위치하는 '''직선 상'''에 패용하게 되어 있으나, [[민간인]] 수훈자의 경우 1개만 받았을 때는 카라 단추구멍에 패용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영웅 금성메달과 사회주의노력영웅 금성메달이 같이 존재할 경우, 소련영웅 메달을 안쪽에 패용한다. 현재 러시아연방영웅 칭호를 같이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소련영웅 칭호를 안쪽에 패용한다. 군공 훈장인 만큼 소련군 최고위 계급인 대다수의 소련 [[원수(계급)|원수]]들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적어도 한 개는 받았을 정도로 흔한 칭호였고, 표도르 톨부힌처럼 생전에 못받은 경우에도 나중에 사후 수훈 형태로 달아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못 받은 경우도 없는 건 아닌데, 니콜라이 불가닌의 경우 소련 원수 계급은 갖고 있었지만 원래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이 칭호 대신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필리프 골리코프]]도 군사기밀을 다루는 정보 계통에서 주로 근무하며 원수까지 오른 인물이었지만, 독소전쟁 초기에 잠깐 야전 지휘관을 맡았다가 자신의 담당 정치장교였던 흐루쇼프와 정치적 충돌을 빚으며 단단히 찍혔기 때문인 지 이 칭호를 받지 못한 채로 원수 진급 후 불과 1년 뒤 퇴역했다. 소련 최후의 원수이자 실질적으로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군부 보수파의 거두 드미트리 야조프의 경우에도 고르바초프가 다소 고깝게 봤는 지 영웅 칭호를 수여하지 않았고, 여기에 야조프가 [[겐나디 야나예프|야나예프]] 부통령 등 정계 보수 인사들과 손잡고 [[8월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소련이 망하면서 영웅과는 영원히 멀어져 버렸다. 그래도 나중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이 잘못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던 까닭에 오래 복역하지 않고 석방되어 러시아군 군사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에서도 쿠데타 가담자에게 영웅 칭호는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조국공훈훈장 4급과 명예훈장 정도만 서훈했다. 용감히 싸웠으나 대조국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 살아 돌아온 군인들은 스탈린 시대에는 출당당하고 불이익을 받았으나 흐루쇼프 시대 이후 영웅 칭호를 받았다.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의 영웅 표트르 가브릴로프와 여성 파일럿 안나 예고로바는 항복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부상을 입고 실신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에서 풀려난 이후 모욕적인 심문을 받았고 [[굴라크]] 수용소에 가지는 않았지만 공산당에서 출당당했다. 그러나 흐루쇼프 시대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가브릴로프는 [[1957년]], 예고로바는 [[1965년]] 영웅 칭호를 받았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전시에 영웅적으로 싸운 [[도시]]와 [[요새]]에게도 영웅칭호가 주어졌다. 이런 경우 '''도시는 [[영웅 도시]]라고''' 부른다. [[세바스토폴]]이 대표적인 예이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도 영웅도시이다. [[파일:세바스토폴 시장.svg|width=100]] [[세바스토폴]] 연방시의 시장. 별이 달려 있는 훈장이 바로 금성메달이다. [[파일:볼고그라드 시장.svg|width=100]] 과거 [[스탈린그라드]]였던 [[볼고그라드]]시의 문장. 윗부분에 금성메달이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